주말 저녁, 친구들과 모여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팽팽한 동점 상황에서 우리 팀 선수가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순간, 옆에 있던 친구가 무릎을 탁 치며 이렇게 외칩니다. “아휴, 슛 쏘기 전부터 표정이 불안하더니,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선수가 공을 차기 전까지는 숨을 죽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빗나간 것으로 확정된 그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뇌를 속여 마치 처음부터 그 실패를 예측하고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건의 결과가 발생하고 난 뒤, 자신은 이미 그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있었다고 굳게 믿어버리는 인간의 얄팍한 심리적 인지 오류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부릅니다. 스포츠 경기나 드라마의 결말을 두고 이런저런 훈수를 두는 것은 일상생활의 소소한 재미로 넘길 수 있지만, 이 역겨운 자기기만이 피가 튀는 주식 시장으로 넘어오는 순간 투자자의 계좌는 오만함이라는 이름의 불길에 휩싸여 잿더미로 변하고 맙니다.
결과를 알고 난 뒤에 그려지는 완벽한 거짓말, 뇌의 자기 합리화
우리의 뇌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무작위로 벌어지는 혼돈의 상황 속에서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뇌는,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입맛대로 재조합하여 그럴싸한 인과관계를 억지로 만들어냅니다. 주식 시장에서 대폭락이 발생하면, 그제야 투자자들은 후행성 경제 지표, 지난주에 나왔던 작은 악재 뉴스, 이미 완성된 끔찍한 음봉 차트를 하나로 짜맞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금리가 이렇게 가파르게 오르는데 당연히 폭락할 수밖에 없었지”, “그때 그 뉴스가 명백한 하락 시그널이었어”라며, 마치 이 모든 혼돈이 사전에 100% 예측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처럼 뇌를 세뇌시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과거로 돌아가 보십시오. 그 ‘명백한 시그널’이 발생했던 당시에 당신은 콧노래를 부르며 추가 매수 버튼을 누르고 있지 않았습니까? 사후 확신 편향은 뼈아픈 과거의 실수를 미화하여 투자자에게 ‘나는 시장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치명적이고도 헛된 통제력을 부여하는 악마의 속삭임입니다.
과거의 망령에 도취되어 전 재산을 인버스에 쏟아부었던 처절한 흑역사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자면, 저 역시 이 사후 확신 편향이라는 뇌의 끔찍한 착각에 빠져 시장의 흐름을 섣불리 예측하려다 계좌를 두 번이나 박살 냈던 처절한 흑역사가 있습니다. 과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글로벌 전염병(팬데믹) 사태로 인해 증시가 수직 낙하하며 대폭락을 맞이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주가가 지하실을 뚫고 바닥을 찍은 뒤 반등하기 시작하자, 저는 뉴스에 도배된 경제 지표와 후행성 차트들을 그럴싸하게 짜맞춰보며 “거봐, 각국 중앙은행에서 이렇게 유동성을 미친 듯이 푸는데 당연히 V자 반등이 나올 수밖에 없었지! 나는 이미 바닥을 알고 있었다고!”라며 스스로를 대단한 경제학자라도 된 양 포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100% 결과가 나온 뒤에 제 뇌가 과거의 비참한 기억을 입맛대로 조작해 낸 역겨운 자기기만이었습니다. 정작 폭락장의 정중앙에 있을 때 저는 공포에 질려 키보드조차 제대로 두드리지 못하고 벌벌 떨었던 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사후 확신 편향이 준 알량한 자신감은 곧바로 치명적인 독이 되었습니다. ‘나는 거시 경제와 시장의 흐름을 완벽하게 읽고 있다’는 건방진 과대망상에 빠진 저는, 얼마 뒤 찾아온 자잘한 단기 조정장에서 “이번에도 완벽한 하락장 초입 시그널이다. 내 예측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섣불리 확신하며 가지고 있던 우량주를 전량 매도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그 돈으로 지수가 하락하면 돈을 버는 인버스(하락 배팅) 상품에 전 재산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자본 시장은 저의 얄팍한 뒷북 예측을 비웃듯, 보란 듯이 전고점을 돌파하며 우상향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결과론적인 해석을 ‘나의 실력’이자 ‘선구안’으로 착각한 대가는, 남들 다 돈 버는 축제 같은 상승장에서 홀로 깡통을 차며 계좌가 녹아내리는 비참한 결말뿐이었습니다. 지금도 폭락장만 오면 유튜브나 주식 커뮤니티에는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지난달부터 도망치라고 경고했지 않느냐”며 떠들어대는 자칭 방구석 워런 버핏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과거 기록을 까보면 상승장에서는 “무조건 10만 전자 간다”며 선동했던 사기꾼들이 대부분입니다. 결과가 이미 나온 뒤에 지나간 퍼즐을 맞추며 개인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무책임한 사후 분석가들의 헛소리에 휘둘린 대가, 그리고 나 스스로도 시장을 예측할 수 있다고 건방을 떨었던 대가는 오롯이 제 계좌의 끔찍한 파멸로 돌아왔습니다.
시장 앞에서는 겸손하라: 헛된 예측을 버리고 대응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오만한 착각을 깨부수고, 변동성이 몰아치는 주식 시장에서 기계처럼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피나는 자기 성찰 훈련이 필요합니다.
매수와 매도의 순간, 그 즉시 ‘투자 일지(Trading Journal)’에 기록을 남겨라:
사후 확신 편향에 뇌를 먹히지 않는 유일한 방어책은 ‘활자화된 기록’뿐입니다. 주식을 매수하거나 매도하는 바로 그 순간, 현재의 감정 상태, 시장의 분위기, 그리고 내가 이 결정을 내린 ‘진짜 이유’를 가감 없이 일기장에 적어두십시오. 훗날 시장이 폭락했을 때 과거의 일지를 들춰보면, 내가 폭락을 미리 예측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상승장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이 매수 버튼을 눌렀던 바보였음을 뼈저리게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시장의 무작위성(Randomness)을 인정하고, 원인 찾기 강박에서 벗어나라:
주식 시장의 모든 등락에는 반드시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십시오. 오늘 시장이 2% 폭락한 이유는 특정 정치인의 발언 때문도 아니고, 어젯밤 발표된 물가 지표 때문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저 거대한 자본들이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매도 버튼을 눌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건에 억지로 이유를 갖다 붙이며 예측 가능한 시장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다음 폭락장에서는 당신이 그 인과관계의 희생양이 될 것입니다.
결론: 주식 시장에 사이드 미러는 존재하지 않는다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백미러(사이드 미러)로는 미래를 볼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이미 벌어진 과거의 사건을 뒤돌아보며 완벽한 해설을 늘어놓는 것은 지나가는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결과가 나온 뒤에야 비로소 차트를 들이밀며 “여기가 저점이었고 저기가 고점이었다”라고 떠드는 사후 분석가들의 달콤한 헛소리에 속지 마십시오. 당신의 뇌가 만들어내는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오만한 착각을 철저하게 짓밟아 버리십시오. 주식 시장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의 결과에 억지로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건방짐을 버리고, 내일 당장 시장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기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응 시나리오’를 짜는 데 집중하는 겸손한 투자자만이 살아남아 부를 거머쥘 수 있습니다.
[출처 및 참고문헌]
- 바루크 피쇼프(Baruch Fischhoff), 「Hindsight is not equal to foresight: The effect of outcome knowledge on judgment under uncertaint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1975) : 인간이 어떤 사건의 결과를 알고 난 후, 그것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다고 착각하는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을 실험적으로 최초 입증한 핵심 논문.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블랙 스완(The Black Swan)』, 동녘사이언스 : 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사건(폭락장)이 발생한 후, 사람들이 이를 소급하여 예측 가능했던 것으로 합리화하는 인지적 오류에 대한 통렬한 비판.
-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김영사 : 뇌가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이해의 환상(Illusion of Understanding)’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