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 부자연구소

주식 시장에서의 인지 오류 이해하기

읽는 시간 약 7분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마음에 드는 겨울 코트를 발견하고 가격표를 뒤집어 보았는데, 원래 가격이 ‘150만 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순간 너무 비싸서 내려놓으려는 찰나, 점원이 다가와 “고객님, 오늘까지만 특별히 70% 할인해서 45만 원에 드립니다”라고 속삭입니다. 이때 우리의 뇌는 45만 원이라는 금액이 내 지갑 사정에 합리적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150만 원짜리를 45만 원에 사는 엄청난 이득’이라고 착각하며 홀린 듯이 카드를 긁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처음 입력된 정보(숫자나 가격)에 강박적으로 얽매여 이후의 합리적인 판단을 그르치는 심리적 오류를 행동경제학에서는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릅니다. 배가 닻을 내리면 그 주위만 맴돌 수밖에 없듯이, 우리의 사고방식도 특정 기준점에 결박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이 닻 내림 효과가 그저 충동구매 정도의 귀여운 손실로 끝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주식 시장에서 이 착각에 빠지면 당신의 계좌는 영원히 회복 불가능한 심해로 가라앉게 됩니다.

뇌를 속이는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숫자, ’52주 최고가’의 함정

주식 시장에서 초보 투자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장 치명적인 ‘닻’은 바로 ‘전고점(최고가)’입니다. 우리는 HTS나 MTS 앱을 켤 때마다 특정 종목의 과거 가장 화려했던 가격표를 무의식적으로 확인합니다. 그리고 주가가 그 최고점에서 30%, 50% 하락해 있으면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 훼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예전에 10만 원 하던 주식이 4만 원이 됐으니 무조건 싸다!”라고 맹신해 버립니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서 ‘과거의 가격’은 현재의 적정 가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 주식이 10만 원을 찍었던 것은 당시 시장의 미친듯한 유동성과 대중의 광기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거품’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는 한 번 각인된 ’10만 원’이라는 숫자를 기업의 본래 가치라고 단정 짓고, 4만 원이라는 현재 가격을 엄청난 바겐세일로 착각하는 치명적인 인지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낙폭 과대’라는 거짓말에 속아 시드머니를 날렸던 처절한 흑역사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이 ‘전고점’이라는 강력한 닻에 걸려들어 계좌가 산산조각 났던 처절한 흑역사가 있습니다. 과거 시장에 특정 테마주 광풍이 불었을 때, 온갖 호재성 찌라시를 달고 15만 원까지 치솟았던 한 주식이 불과 몇 달 만에 5만 원으로 폭락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기업의 재무제표나 펀더멘털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오로지 ’15만 원짜리가 5만 원이 되었으니 무려 3분의 1 토막 바겐세일이다!’라는 1차원적인 착각에 빠져 마이너스 통장까지 끌어모아 풀매수를 감행했습니다.

당시 경제 방송과 주식 커뮤니티에서는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낙폭 과대 밴드 구간이다”, “저가 매수의 절호의 기회다”라는 무책임한 선동을 쏟아냈고, 저는 그들의 달콤한 헛소리 뒤에 숨어 제 멍청한 판단을 정당화했습니다. 하지만 자본 시장은 제 얄팍한 기대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5만 원이 바닥인 줄 알았던 그 주식은 거품이 완벽히 꺼지면서 1만 원대까지 수직 낙하해 버렸습니다.

15만 원이라는 가격은 그저 시장의 탐욕이 만들어낸 신기루였을 뿐, 그 기업의 진짜 내재 가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처음 찍힌 최고점 가격을 절대적인 기준점(닻)으로 맹신하며 ‘많이 떨어졌으니 오를 것’이라 믿었던 대가는, 수년간 피땀 흘려 모은 시드머니의 80%가 증발해 버리는 끔찍한 깡통 계좌였습니다. 남의 돈이라고 쉽게 ‘저점 매수’를 외치는 무책임한 시장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거르지 못하고, ‘가격’과 ‘가치’를 혼동한 대가로 저는 피눈물을 흘리며 투자 시장의 냉혹함을 뼛속 깊이 새겨야만 했습니다.

과거의 망령을 지우고 차가운 ‘가치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라

닻 내림 효과라는 지독한 족쇄를 끊어내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상위 1%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과거의 가격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첫째, 차트에서 ‘최고점’을 가리고 현재의 기업 가치만 백지상태에서 분석하십시오.
“이 주식이 예전에 얼마였는데”라는 생각은 투자 판단에 1%의 도움도 되지 않는 쓰레기 데이터입니다. 지금 당장 이 기업이 벌어들이는 영업 이익률, 미래 현금 흐름, 그리고 PER이나 PBR 같은 차가운 재무 데이터만을 바탕으로 이 주식이 현재 가격(4만 원)에도 살 가치가 있는지를 독립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둘째, ‘낙폭 과대’라는 단어를 투자 사전에 영원히 삭제하십시오.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 주식이 싸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기업의 경쟁력이 시장에서 처참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경고등일 수 있습니다. 스마트 머니(Smart Money)와 기관 투자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가치 있는 주식을 반토막이 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싼 주식은 있어도, 이유 없이 폭락하는 주식은 없습니다.

결론: 주식은 자신이 과거에 얼마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린치는 “하락하는 주식을 잡는 것은 떨어지는 칼날을 맨손으로 잡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습니다. 주식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그 주식은 자신이 과거에 15만 원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며, 당신이 5만 원에 사서 본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

단순히 전고점 대비 많이 떨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수 버튼을 누르는 어리석은 짓을 멈추십시오. 대중이 과거의 화려했던 가격표라는 ‘닻’에 묶여 가라앉는 배와 함께 운명을 맞이할 때, 당신은 그 닻을 과감히 끊어내고 오직 기업의 진짜 펀더멘털이라는 나침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시장의 거품이 걷힌 뒤에 드러나는 차가운 진실을 직면할 수 있는 자만이, 무자비한 주식 시장에서 살아남아 진정한 부를 거머쥘 수 있습니다.


[출처 및 참고문헌]

  •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Science (1974) :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를 포함한 인간의 휴리스틱 오류를 최초로 증명한 행동경제학의 기념비적 논문.
  • 세스 클라만(Seth Klarman), 『안전마진(Margin of Safety)』, 밸류타임 : 가격 하락을 가치 상승으로 착각하는 투자자들의 심리적 오류와 가치 평가의 중요성 비판.
  • 피터 린치(Peter Lynch), 존 로스차일드(John Rothchild),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One Up On Wall Street)』,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주가가 많이 떨어졌으니 바닥일 것’이라는 착각(떨어지는 칼날 잡기)에 대한 실전적 경고.
세주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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