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 부자연구소

실패한 투자자의 교훈: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을 인정하라

읽는 시간 약 7분

주사위를 던져 윷놀이를 하거나 보드게임을 할 때, 유독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높은 숫자가 나와야 할 때는 주사위를 손에 쥐고 온 힘을 다해 세게 던지고, 반대로 낮은 숫자가 필요할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살짝 굴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주사위가 던져진 이후의 결괏값은 철저하게 확률에 의해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내 손끝의 힘’이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이처럼 인간이 실제로는 통제할 수 없는 우연적인 사건이나 통제 불가능한 영역을 자신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심리적 오류를 행동경제학에서는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라고 부릅니다. 이 귀여운 착각이 주사위 놀이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이 환상이 피가 튀는 주식 시장으로 넘어오는 순간 개인 투자자의 계좌는 걷잡을 수 없는 파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우연의 연속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오만한 뇌

우리는 왜 자본 시장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혼돈의 시스템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요? 이는 인간의 뇌가 ‘불확실성’을 극도로 혐오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패턴이 없는 혼돈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뇌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무작위의 결과에 억지로 인과관계를 부여하고 그것을 자신의 통제력 안에 있다고 믿어버립니다.

주식 시장에서 통제의 환상이 가장 극대화되는 시점은 역설적으로 ‘초심자의 행운’이 찾아올 때입니다. 이제 막 계좌를 개설한 초보 투자자가 유튜브 영상 몇 개, 혹은 증권사 리포트 몇 개를 읽고 감으로 찍은 주식이 우연한 상승장을 만나 급등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투자자의 뇌는 시장의 거대한 수급이나 우연적 요소는 깡그리 무시한 채, “내가 차트를 보는 눈이 있구나”, “내 분석력이 뛰어난 덕분이야”라며 우연한 성공을 온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귀인해 버립니다. 바로 이 순간, 통제의 환상이라는 괴물이 눈을 뜨며 본격적인 파멸의 서막이 오르게 됩니다.

헛된 통제력이 낳은 오만, 그리고 뼈아픈 깡통 계좌의 추억

저 역시 과거 통제의 환상에 끔찍하게 사로잡혀 자만을 떨다가 시장에서 처절하게 응징당했던 뼈아픈 흑역사가 있습니다.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저는 차트 보조지표 몇 개와 얕은 테마주 지식을 버무려 단타 매매를 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연속으로 5번이나 수익을 내는 기염을 토했죠.

당시 제 오만함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주식 별거 아니네. 내가 차트 흐름을 완벽하게 읽고 통제하고 있어!”라는 심각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저는 제 ‘실력’을 맹신한 나머지, 대출까지 끌어와 평소보다 10배가 넘는 엄청난 비중을 한 종목에 몰빵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주가가 예상과 다르게 하락하기 시작했음에도 “이건 세력의 속임수 개미 털기일 뿐이야. 내 시나리오대로 무조건 다시 반등해”라며 미친 듯이 물타기를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저의 알량한 분석력 따위는 비웃기라도 하듯, 통제 불가능한 거시 경제의 악재를 터뜨리며 그 종목을 지하 깊숙한 곳으로 처박아 버렸습니다. 시장의 흐름, 외국인과 기관의 자금력, 글로벌 경제 이슈 등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는 단 하나도 없었음에도, 저는 제 알량한 차트 분석 몇 줄로 그 거대한 쓰나미를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던 비루한 바보였습니다. 손절 타이밍마저 놓치고 깡통 계좌를 마주한 그 끔찍한 새벽, 저는 시건방진 ‘전문가 코스프레’가 얼마나 위험한 오만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인터넷 주식 커뮤니티나 단톡방에 가보면, 차트에 복잡한 선을 수십 개 그어놓고 1원 단위까지 주가의 미래를 정확히 맞출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자칭 ‘재야의 고수’들이 넘쳐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씁쓸한 비판 의식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시나리오는 결국 통제의 환상에 빠진 개인들의 공포를 자극하여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려는 사기극이거나, 아니면 본인 스스로가 거대한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예측하지 말고 대응하라: 겸손함만이 유일한 생존 무기

투자의 대가 피터 린치(Peter Lynch)는 “금리를 예측하려고 14분을 쓴다면, 그중 12분은 버린 시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거시 경제와 주식 시장의 단기적인 움직임은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한 현자의 묵직한 조언입니다.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 험난한 주식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철저하게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첫째, 시장은 나의 ‘예측’ 영역이 아니라 철저한 ‘대응’의 영역임을 인정하십시오.
“내가 샀으니 무조건 오를 거야”, “내 분석은 완벽해”라는 건방진 마인드를 버려야 합니다. 내 통제 밖의 돌발 변수로 주가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때, “시장이 틀렸어!”라고 고집을 부리는 대신 “내가 틀렸구나”라고 즉각적으로 꼬리를 내리고 쿨하게 손절매를 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둘째,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냉정하게 구분하십시오.
내일의 주가, 다음 달의 금리, 기업의 분기 실적은 내 통제권 밖의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어느 시점에’, ‘얼마의 비중으로’, ‘언제 손절하고 익절할 것인가’ 하는 나의 ‘행동 원칙’은 100% 내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성공적인 투자는 신의 영역인 시장의 방향을 억지로 통제하려는 오만함을 버리고, 통제 불가능한 폭풍우 속에서도 묵묵히 나의 멘탈과 매매 원칙만을 기계처럼 지켜내는 고통스러운 수행의 과정입니다. 오직 시장 앞에 한없이 겸손한 자만이, 통제의 환상에 빠져 불나방처럼 타죽어가는 대중들의 무덤 위에서 살아남아 수익의 과실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및 참고문헌]

  • 엘런 랭어(Ellen Langer), 「The Illusion of Contro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975) : ‘통제의 환상’ 개념을 심리학적으로 최초 정의하고 실험을 통해 증명한 핵심 논문.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행운에 속지 마라(Fooled by Randomness)』, 중앙북스 : 금융 시장에서 운과 실력을 혼동하는 현상과 불확실성에 대한 심층 비판.
  •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김영사 : 뇌의 직관적 판단이 만들어내는 인과관계의 착각과 과신 편향(Overconfidence) 분석.
세주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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